샬롬! 혹시 성경을 두꺼운 교리책이나 지켜야 할 의무가 가득한 '법전'으로 느끼신 적이 있나요? 하지만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끊어진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지독하고도 신실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하나님의 진짜 본심, 그리고 그분과 나누는 가장 아름다운 대화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성경이 말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 "너와 다시 산책하고 싶다"
1) 에덴동산: 의무가 아닌 '친밀함'이었던 관계
태초의 에덴동산(기쁨의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는 결코 두려움이나 율법, 의무로 묶여 있지 않아요.
에덴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늘 함께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던 가장 친밀하고 완벽한 사랑의 상태였죠. 그 시절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벽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는 사건이 발생해요. 이 때 죄가 들어오면서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나무 뒤로 숨는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2) 십자가: 끊어진 다리를 다시 놓으신 하나님의 초대
하나님은 당신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먼저 다가갈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하나님은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의 담을 허무셨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안을 막고 있던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외치신 간절한 사랑의 선언이었어요.
"이제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다. 다시 나에게 나아와 나와 함께 걸어가자."
3)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 Doing이 아닌 Being
우리는 자주 오해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내야(Doing) 사랑받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을 '아빠'라 부르고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존재 자체(Being)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우리를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셨어요. 사명도, 전도도, 봉사도 결코 억지로 해내는 숙제가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달콤한 사랑의 동행에서 자연스럽게 맺히는 '사랑의 열매'일 뿐이랍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5)
신앙생활로 지친 당신에게 드리는 하나님의 음성
지금 어떤 사명이나 의무감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신가요?
"내가 교회 봉사를 많이 해야, 헌금을 많이 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고단하신가요?
하나님은 자녀에게 그런 부담을 강요하지 않으세요. 자녀가 기쁨으로 하는 일은 기뻐하시고 응원하시지만, 사명감 때문에 지쳐있다면 그저 이렇게 말씀하세요.
"얘야, 애쓰지 말고 그저 내 품 안에서 편히 쉬어라."
신앙의 본질은 제도나 의무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1:1 인격적 관계'예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단 한 가지는, 오늘 하루도 그분과 마음을 나누며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은혜롭고 빛나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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